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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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의 밤>> 제2부(36)
2015년 02월 04일 10시 27분  조회:2973  추천:3  작성자: 김송죽
 

                          36

 

 

 

 

 

 

    염왕산이 완전히 괴멸되던 그날.

    정민호가 총소리에 놀라 깨여났을 때는 이미 늦었다. 300여명의 일본군이 쥐도 새도 못빠지게 할 양으로 그들을 포위하고 죄여들었던것이다. 그 첫방은 새벽녘이 되니 몰려드는 잠을 못이겨 고개방아를 찧고있던 보초가 다행히 육감적으로나마 적이 왔다는것을 알고 어망결에 갈긴것이였다.

    잠에 골아떨어졌던 류자들은 모두깨여났다. 혼탕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말았다. 이런데다 대고 적은 몰사격을 부었다.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박암속에서 벌어진 혼전이였다. 탄우속에서 사람도 말도 절명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몸서리치는 일이였다. 민호는 말을 찾았다. 죽지 않은 말이 있었다. 그 말은 탄알을 맞지 않았건만 놀래여 날치였다. 밈호는 그 말을 붙잡으려고 뛰여갔다. 그러나 그가 곁에 가자 말은 꼭그라지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얼굴이 해쓱해진 민호는 절명하고있는 그 말에 몸을 딱 붙이고 정면에서 불질하는 적병 셋을 련방 쏴눕혔다.

    그래서 출구가 생기자 냅다뛰면서 소리쳤다.

   《나를 따라오라!》        

    민호는 이렇게 포위를 뚫고 나왔다. 정신없이 달려가던 그는 가로놓인 삭정이에 다리가 걸리여 곤두박질쳤다. 정신이 아찔했다. 땅을 짚고 일어나려다가 되주저앉고말았다. 정신상 육체상 다 큰 타격을 받은지라 그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질풍같이 지나는 오열에 온 몸이 떨렸다. 이게 무슨놈의 꼴인가, 무슨놈의 꼴? 이젠 어떻게 해야하는가?.... 지렌마에 빠졌을 때의 모양으로 그는 어찌할바를 몰라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뒤쪽에서는 총소리가 그냥 들볶아댔다.

    민호는 다시금 정신차리고 일어섰다. 그는 산채의 동산수림속에 들어 있었다. 앞으로 그냥 내뛰였다. 그러다가 총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도망치기를 멈추고 뒤쪽을 돌아다보았다. 그를 따라온 류자는 하나도 없었다. 제길할것 하나도 포위를 못뚫었단말인가? 그는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걷잡지 못할 공허감이 가슴을 꽉 채웠다. 눈물이 당장 막 쏟아지려했다. 울지는 말아야했다. 울음이 비감을 몰아와 그를 허물어뜨릴수 있으니. 마음을 그렇게 도슬려 먹으니 공포도 불안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오로지 여기를 어서 벗어나야한다는 하나의 집념이 그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이제는 말도 없다. 탄창이 비여버린 권총은 해서 뭘하는가. 그는 그것을 던져버렸다. 일어서자, 넘어지지 말아야한다. 몸을 다시일으킨 민호는 산을 넘고 또 넘었다. 동녘이 밝아왔다. 그는 그쪽을 바라고 그냥갔다. 그래서 오후 해질녘이 거진되여 강가에 이르렀다.

    그것은 남쪽에서 내려와 곧추 북으로 흐르는 목단강이였다.

    흐르는 강물을 보니 가슴이 오리오리 찢어졌다.

   《나는 파멸되였구나! 철저히 파멸되였어! 아아ㅡ하!》

    민호는 목놓아 소리치고나서 강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목놓아 실컷 울었다.

    한바탕 통곡하고나니 가슴이 좀 후련해나는것만같았다.

    옷을 벗고 강물에 뛰여들었다. 차고 시원한 물은 불덩이같이 달아오르고 땀으로 더러워진 몸을 식혀주고 씼어주었다. 피곤은 점차 사라지고 몸은 거뿐해나면서 정신도 차츰 맑아졌다.

    어래무에 가자. 인정깊은 어래무사람들은 나를 잡아 죽이지 않을테니 거기로 가자. 거기 어느 산속에 숨어 짐승이나 잡아먹고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죽어버리고말자. 자유로운것 같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추궁받는 몸이 되었으니 고향에도 다른 어디에도 갈곳이 없는 신세가 아닌가.

    강을 따라 아래로 내렸다.

    내려가면서 목에 아직도 걸려있는 부대화상을 잡아챘다.

   《네갈데로 가거라. 나의 그 생활도 이젠 끝났다.》

    그는 부대화상을 흐르는 강물에 던져버렸다.

    내내 물을 따라 내려가던 민호는 강변에 다가붙은 한 마을을 지나다가 쪽배 하나가 기슭에 매여있는것을 발견했다. 때는 이틑날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는 새벽이였다. 좋구나, 잘됐다. 민호는 추호의 주저도 꺼리낌도 없이 그것을 풀어 타고 강을 내려갔다.

    한데 창자가 점점 등가죽에 가 붙기시작했다. 무슨 방법으로 이놈의 구복을 달랠가. 민호는 처녀성복전도 훔쳐먹어야 맥이 나는건데 하면서 아래로 그냥 내려가다가 마침 한곳에 이르러 강바닥모래를 파는 사람을 만났다. 저 사람들이 먹을것을 갖고있을것이다. 급하면 관세음보살 어려우면 나무아미타불이라햇더라. 그는 정말 배가 곱파 죽을지경인데 제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빌었다.

   《당신은 대체 누군데 이 모양이요?》

    그 사람이 경계하는 한편 기색이 몹시 심각해지며 캐물었다.

   《왜놈과 싸우다가 이렇게.... 도와주시오. 잊지 않겠습니다.》

    저쪽은 난경에 처한 항일련군으로 알아채고 경계심을 풀면서 태도가 좋아졌다.

   《왜서 사람을 그리두 붙잡는지 원. 석달전이외다. 우리 마을서두 몇이 잡혀가서는 감감 무소식이외다.》

    나이 쉰살을 넘었을 그 사람은 자기가 먹을 점심밥을 싼 보자기를 풀면서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했다.

    석달전이면 5월에 발생한 대수색일것이다. 일본군과 위만군은 3월 15일에 여기 북만의 파언(巴彦), 목란(木蘭), 동흥(東興) 세 개현에서 돌연스레 공산당원과 애국적인 군중을 대거체포하더니 5월 28일에 또다시 그같은 방식으로 수색체포작전을 하여 도합 720명을 잡아갔는데 그 중에서 126을 참혹하게 학살한것이다.

   《산사람은 산에서 살아야지 나와서는 배기기 어렵수다.》

   《그 말씀이 감사하오만 이젠 산속에서도 백여내기 어렵수다.》

    민호는 그 사람의 선의적인 충고를 이렇게 받으면서 주는 밥을 게눈감추듯 먹어버렸다.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는 쪽배를 몰아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밤에 의란에 이르러 쪽배는 마침 송화강에 밀려들었다.

    의란아래 송화강남안의 가목사는 이때 벌써 의란보다 인구가 몇곱절이나 많은 신흥도시로 발족했거니와 삼강성(三江省)의 수부로까지 되어 민호가 언젠가 안해찾으러 떠나면서 콜트(colt)권총을 산적이있는 열래진 서쪽 저아래 부금, 동강, 무원을 포함한 여러현과 동안성(東安省)까지 포함한 광활한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다.

    이 도시에는 일본주둔군이 있거니와 관동군정보부의 지부와 관동군헌병대가 있었으며 위만헌병 제7병퇀도 있었다. 그것뿐아니다. 혹독하고 무서운것은 은페된 특무기관들이였다. 삼강성경무청이 바로 특무기관이였다. 삼정화원(三井花圓)이란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삼도리화연구소(三島理化硏究所)라 부르기도 하는 특무감옥은 전문적으로 항일분자들을 잡아다 가두고 그들을 고형하고 학살하는 악마의 소굴이며 지옥이였다. 그리고 또 있었다. 간도성의 연길에 본부를 두고있다가 몇해전에 북만으로 옮겨온 가목사시의 치안공작반(治安工作班)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치안반의 100여명 조선사람의 깝지를 쓴 특무는 모두가 한때는 반만항일을 하다가 변절한 공산당원과 독립군이 아니면 민족을 구한다고 납뜨던 얼뜨기혁명가들이였다. 그런자들이 지금 눈에 쌍불을 켜고 로획물을 찾고 있었다. 

    민호는 상황이 이러함을 모르는게 아니다. 악마의 손은 만주국어디에나 다 뻗치고있는것이다.

    붙잡히지 말자, 구사일생으로 죽음을 면했는데 이제 잡히기만 하면 끝장이다. 민호는 밤에 철교밑을 지나 가목사를 벗어져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랬다가 부금(富錦)에 당도해서야 그는 자기가 스스로 범의 굴을 찾아왔음을 깨닫게 되였다. 여기는 가목사보다 썩 더 위험한 곳이였던것이다. 관동군은 대쏘작전(對蘇作戰)을 준비하면서 대부분의 병력을 북만국경선일대에 배치했거니와 이 지대의 경비를 특별히 가강하고있었던것이다.

    민호는 거루배짐군을 만나 아래의 형편을 물어봤다. 

   《임잔 뭐하러 거기루 가오. 조사가 심한걸 모르오?》

    하고 그 사람은 알려주었던것이다.

   《그렇게 심합니까?》

   《보아하니 본지방사람같지는 않은데 정신차리오.》

    거루배짐군은 이러면서 아래의 동강일대에는 위만의 경찰대가 늘어서서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람은 무조건 잡아 가두고 심문한다고 알려주었다.

    민호는 자기가 지금 허저인이 사는 어래무에 가는 길이라면서 정녕 그렇다면 흑룡강쪽으로는 꿈에도 가기가 어렵겠구만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아 그런가 그러면 가지 말라 자기는 어래무란 마을이 어데붙었는지는 모르지만 허저인들은 전해에 모두 부금아래의 소택지로 쫓겨간것만은 똑똑히 아는거니 목숨을 잃겠거든 흑룡쪽으로 가라했다.

    부금아래의 소택지라니 어딜가? 그들을 가두느라 집체이주를 시키것만은 분명한데 곳을 모르면서 찾아가자니 아득했다. 하지만 거기를 내놓고는 선택할 곳이란 없었다. 이미내친 걸음이니 가야했다. 민호는 아래로 더 내려가지 않기로 맘먹었다. 그는 거루배짐꾼에게 위탁해서 자기가 훔쳐서 타고 온 배를 헐값으로 팔아버렸다.

    민호는 그곳을 떠나 부금아래를 향해 걸음을 놓았다.

    일본군은 허저인들이 항일련군에 참가하고 항일련군과 련계하는것을 막으며 국경선을 청결하느라 두해전에 지지거, 모루훙커, 하위, 가진구와 친더리 등지의 허저인은 모두 부금아래의 소택삼림지대에 몰아넣고 1. 2. 3부락을 만들었던거다.

    부금일대는 워낙 인구가 희소한 곳이여서 마을을 만나기가 힘든데다 실상 만난다해도 마을로 들어가기 어려웠다. 어느 마을이면 자위단이 없고 협화회가 없겠는가. 국경이 가까우니 더 심할것이다.      민호는 이 점을 미처생각못했던것이다. 

    쫓기듯 하는 먼길에 다리골이 빠질지경인 민호는 마을을 만나도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배가 고프면 감자를 파먹거나 풋강냉이를 먹으면서 밖에서 밤을 지내군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마을밖에서 밭으로 가는 농군을 만나 그한테 물어서야 허저인들이 사는 마을로 가는 바른길을 알수있게 되였다.

    결심먹고 찾는 곳이라 없을리 없다.

    민호는 마침내 허저인마을에 이르렀다. 두마을사이에 그리넓지 않은 한갈래의 흐릿한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을의 조무래기들의 이 시내의 위쪽에서 물탕을 치면서 놀아대고 아래에서는 조약돌을 뿌려 물수제비뜨는 내기를 하고 있었다. 민호가 조약돌을 뿌리며 노는 아이들한테로 말을 물으러 다가가는데 마침 한 중년의 부녀가 반두를 들고 고기잡으러 오고 있었다. 민호는 몸을 돌려 그 녀인가까이로 갔다.

   《저 말좀 물읍시다.》

    그녀는 무르춤하면서 다소 경아한 눈으로 사나이를 보았다.

   《이 마을에 혹시 어래무에서 이사온 집이 없는지요?》

   《있어요. 바로 이 마을에 다 이사왔지요. 손님은?....》

   《나도 전에는....》

   《손님은 유씨댁을 찾아오지 않는가요?》

   《그렇습니다. 저.....》

   《아유이런!....》

    녀인은 갑자기 탄사를 내지르고는 손에 들었던 반두마저 떨구면서 반가와 어쩔줄을 몰라했다. 나쟈의 동생 린화의 처였던것이다.

    그런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어쩌면 이다지도.... 민호보다 나이가 다섯살이나 적으니 그녀는 올해 38살일것이다. 한데도 로파모양이 되었으니 세월이 무정한가, 세상이 혹독한가? 모두들 편안한가 물었더니 그녀는 눈물을 훔치였다. 장모가 몹쓸 점염병에 걸려 돌아간 후에는 린화가 아편쟁이로 돼버렸다는거다. 남편마저 인간페물이 되니 있으나마나한거요 끈떨어진 신세나 답지 않게 된 이 녀인은 지금 제 손으로 고기를 잡아 먹으면서 근근히 연명해가고 있었다. 나쟈의 부부는 살아있지만 아들셋에서 둘이나 병마에 잃었다. 의란에서 공부해 거기서 그냥 사는 청량이 하나만 무고했다.

    그녀가 들어가 알려서 나쟈가 잃었던 제 매제를 맞으러 달려나왔다. 그는 이 마을 자위단의 단장이였다. 하여 민호는 마음놓고 마을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난이 왜 이리도 질길가!

    처남의 집이라해서 들어가 보니 가랑이가 째지게 가난해서 눈뜨고 보기어려웠다. 머리가 반백이 되어버린 나쟈의 처는 단물이 난 옷을 입었고 마대로 솜을 싸놓은것이 이불이랍시고 낡아버린 궤짝우에 당그랗게 놓여있을 뿐 벽에는 서발막대기 휘둘러도 걸릴것 없었다. 나쟈가 사는 주제가 이러하니 다른집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들이 지금 먹고있는것은 알곡이 아니라 동아와 물고기와 야채뿐인데 그것마저 배를 불리기 어려웠다. 이같이 극빈한 처지에서 허약자는 늘어나고 밤자고나면 힘꼴쓰던 장골도 꺾꾸러진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흥농합작사는 다른 종족들한테서 량곡출하를 강요하듯이 허저인들의 손에서 헐값으로 어렵품들을 걷어간다니 하늘에 대고 통곡이나 할 일이였다. 계다가 정부는 <흡연증(吸煙證)>이라는것 까지 발급해 허다한 사람이 린화모양으로 아편에 중독되여 일을 못했고 부녀는 생육을 잃다보니 워낙 얼마안되던 이 민족은 거의 멸족의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가련하오... 이대루야 어떻게 살겠소. 아 하 망할놈의 세상!》

    민호는 눈물날지경 불쌍하여 울부짖었다.

    나쟈는 영리별인줄로 알았던 사람이 찾아오니 반갑기 그지없지만 지금 살아가는 신세가 하도 기구해서 눈물을 흘렸다.

   《하늘도 무심하지. 사람사는 세상을 어쩌면 이꼴로 만든단말이요. 매제도 이제는 늙는구만!》

   《늙어도 한얼님의 덕분인지 목숨하나는 잘 붙어있소.》

    민호는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했다. 그리고나서 츄얼의 소식을 아는가고 물었다.

   《츄얼이는 이젠 이 세상사람아닐세.》

   《뭐라오!?....》

    민호는 눈앞이 아찔해났다.

   《이제는 다섯해가 되는구만. 걔도 병으루 앓다가 그만....》

    나쟈의 처가 한숨지으면서 남편의 말꼬리를 이었다.

   《병도 병이겠지만 그래서 죽은것 같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죽었단말입니까?》

    나쟈의 처는 비애에 잠기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볼러갔을 때였어요. 그때도 시누인 제 남편을 외우더군요. 자기는 남편앞에 죄지은 녀자라면서 또 울었어요. 그리구는 자기를 속여 그 지경으로 만든 곡가놈을 찾아 원쑤갚지 못하는걸 몹시 원통해하였어요.》

   《그러던가요! 헌데도 난 그놈을 여직 살려줬지. 후ㅡ》

    민호는 죽은 안해앞에 미안해하면서 회오의 한숨을 지었다.

    나쟈의 처가 동강났던 말을 이었다.

   《시누이는 그리구 한가지 일을 부탁하데요.》

   《무슨일을?》

   《태극기라는것을 자기가 건사했는데 그것을....》

   《뭐랍니까, 태극기를 건사했다구요!?》

   《그래요. 시누이가 그걸 건사했대요. 남편이 중히 여기던것이라구요. 자기 품에 건사하기는 어려워 그것을 화옥당 자기있던 방 마루밑에 압침으로 붙여놨대요. 그래놨으니 아무때건 남편이 찾거든 거게있다고 알려주라고 나한테 부탁했어요.》

   《그러더란말이지!》

    민호는 목이 메이도록 감사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낯이 확 달아났다. 자기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것을 츄얼이가 그리도 중히 여겼으니 무엇이라 말을 할가....

    최기덕이 어래무를 떠나간지 며칠안되여서다. 츄얼이가 하루는 흑룡강에 떠있는 쏘련배를 보고와서 희한한지 말했다.

   《여봐요, 난 오늘 굉장히 큰 배를 구경했어요.》

   《군함이요?》

   《아니애요. 군함이면 대포있겠는데 그런건 없는 배였어요. 그렇다구 객선도 아니구요.》

   《군함도 아니고 객선도 아니라. 하다면 그건 짐배겠구만.》

   《아마 그렇겠죠. 다른 배일수야 있나요. 앞코에 빨간 깃대를 꽂았는데 그게 바람에 팔팔 날리는게 어쩜 그리두 보기좋나요. 참 조선기도 그같이 보기좋은가요?》

   《보기좋지. 그 기보다 훨씬 더 먼저 만들었고 더 아름답지.》

    민호는 이러곤 그 모양이 어떻게 생긴거라고 입으로 묘사했다. 그리고는 츄얼이더러 옥당목을 사오라해서 훗날 아예 한포기 정성껏 만들었고 그것을 태극기라 부르는데 독립의 그날이 돌아오면 만세를 부르면서 하늘에 펄펄 날리리라 했던것이다.

    츄얼이는 그 깃발을 잘 포개여 천에 싼 후 베개로 사용하는 가죽부대속에 넣어 건사했다. 선연한 깃발은 망국한을 품고있는 그에게 꿈에서마저 국치를 잊지 말라고 일깨워주곤했던것이다.

    오늘 이 시각 츄얼의 그 갸륵한 소행이 그를 다시일깨워준다.

    그런데 츄얼이는.... 3년전에 츄얼이와 한감방에서 지냈던 동강진의 녀인 하나가 만기출옥하여 돌아와 츄얼이는 감창에 걸려 고생하다가 그것이 치료될 무렵 우울증에 결려있더니 유언도 없이 단식사(斷食死)를 했노라 알려주었다고 한다.

    과연 기구한 일생이였다!

    나쟈가 이제 가면 어디로 갈테냐, 만주땅에서는 이러고 다녀서는 몸둘곳도 없잖으냐, 자기가 보를 서줄테니 귀순하라했다.

    귀순이라니 웬 말인가! 민호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민호가 구데기되여 밟혀죽는대두 그짓은 안할테요.》

    민호는 여기에 더 있고싶지 않았다. 그는 나쟈보고 쓰지 않는 작살이 있거든 달라했다. 나쟈는 그건해서 뭘하려는가 하면서 주었다. 민호는 그것으로 뽐창 세 개를 만들었다. 하나는 곡치환의 가슴에 박아주고 둘은 만일의 경우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쓸것이다.

    나쟈는 귀가 질긴 민호를 더 붇들어 둘 재간이 없었다.

   《형님! 내가 이러구 떠나서는 언제다시 올지 모르겠구만. 하기야 죽지 않고 오래사노라면 다시만날날이 있겠지만. 부디 몸무사하길 바라오. 그리구 자....》

    민호는 올때 쪽배팔아 생긴 돈 절반을 갈라 나쟈에게 주면서 그것으로 우선 집식솔들을 옷부터 해입히라했다.

   《이돈!.... 매제도 쓸일이 많겠는데....》

   《내 걱정은 마오. 이거면 돼. 없으면 또 방법나지겠지. 혼자몸에 어디가면 못살라구.》

    민호는 사흘을 묵고 떠났다.

    곡치환! 곡치환! 네놈은 어디에 있느냐. 땅속에 들어갔대도 내  너를 기어이 찾아 낼테다. 민호는 가목사에 이르러 옷을 사서 몽땅 갈아입었다. 산사람의 티가 나지 않게끔 신사답게 분장해야했다. 양복차림을 했더니 제절로도 의젓하고 태깔이 나는것 같았다.

    민호는 곡치환의 집이 아성에 있다는 기억이 나서 그리로 갔다. 한데 가보니 곡치환이 아성에 없었다. 누군가 몇해전에 일면파로 이사를 갔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가보니 거기에도 없었다. 본댁을 차버리고 다른 계집차고 가버렸는데 누구도 종적을 모른다는거다. 늦바람에 오금이 풀린모양이다.

    그 미꾸라지같은 놈을 내가 어디가면 붙잡을 수 있을가?.... 두달을 돌아다니고 나니 돈이 들창났다. 망문투식(望門投食)을 하기도 어려운 세상이였다. 민호는 돈있는 신사를 만나면 돈을 억탈해냈다. 여기서 붇잡힐것 같으면 저기로 피했다. 호구도 신분증도 소개신도 없는 검은 사람이고 사회의 죄인이 된 그는 오직 이렇게 밖에 사는 수 없었다. 붙잡히는 날이면 끝장이니 그야말로 사자밥싸가지고 다니는 신세였다. 죽은 사람이니 정이 멀어가지만 품고 간 원한만은 어떻게 해서든 꼭 풀어주고말리라는 그였다.

    민호는 이 도시에 가 찾다가 없으면 저 도시로 저 도시에서 찾다가 없으면 또 다른 도시에 가 찾았다. 곡치환은 꼭 도시에서 살 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듬해 여름 할빈에 가서야 비로서 그자를 찾아냈다.

    자가사리끓듯 하는 시장과 조용한 공원을 한고패돌고 난 민호는 그곳 남강구 대직가에 있는 극락사(極樂寺)에서 곡치환을 보았다. 분명 곡치환이였다!

    환갑이 언녕지난 그자는 젊은녀자를 끼고 함께 천왕전(天王殿)의 미륵불에 불공하고 나오는 중이였다. 웬 신사가 곡선생 하고 부르니 왜 그러우 하는 대답소리를 잡아듣고 고개돌려 보았더니 마침 그였던것이다. 하마터면 모를번했다. 이젠 이게 몇해인가!

    양복입고 중절모쓰고 구두신고 개화장집고.... 한뉘 인육장사로 살아온 곡치한은 늙긴해도 아직 꿋꿋했다.

    곡치환은 종루구경을 하고나서 자기를 부른 신사와 함께 녀인을 끼고 부도탑쪽으로 갔다. 불공하러 오는 사람들은 천왕전 뒤 석가모니상이 모셔져있는 대웅보전까지 밖에 못들어가는데 부도탑까지 구경시키는걸 보면 일개 인육장사놈이건만 절의 중과 관계가 괜찮은모양이다. 

    민호는 담장밖에서 그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망할자식, 네놈 하나를 찾느라 온 만주땅을 헤맸다.》

    민호는 이제라도 찾아냈으니 기쁘기 한량없었다. 조롱박같이 매끄러운 이자가 하도 린색해서 곡뽀드라지라는 별명을 가진 일과 인질로 잡혀와갖고도 돈 한푼없다며 떼질쓰길래 유서를 남기라했더니만 수수께끼같은 글을 지어 바치던 일, 그통에 되려 겨울구두속에 감춘 금과 돈만 아끼우고 만 일을 상기하면 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때 저녀석의 얕은 꾀를 과연 본때스럽게 까밝혔더랬어. 그러면서도 저놈이 제 각시를 팔아먹은건 몰랐지. 그러고 보면 결국 내가 멍청이였어. 하지만 됐어. 오늘은 단단히 결산을 해야지.

    머리우에서 해가 이글거리면서 불비를 퍼붓고 있었다. 저놈의 홍광자(해)가 지랄이 나는거냐 제길할거. 민호는 가로수 그늘을 찾아갔다. 부도탑구경을 간 자들이 인차돌아오지 않았다. 이놈의 월자(시계)가 드디가는거냐 내가 속이 끓는거냐. 민호는 번들거리는 줄에 매여 연미복의 웃호주머니에 넣은 회중시계를 꺼내보았다.

   《제길할 녀석, 왜 아직두 바라나오지 않을가.》

    오래도록 나오지 않아 초조해나기시작했다.

    욕지걸이가 다시나가는데 마침 그 셋이 담장밖으로 나왔다.

   《정말 때려죽일 놈이구나, 마지막날까지 날 고생시키니.》 

    민호는 입속으로 중얼대면서 곡가를 째려보았다.

    저쪽사나이는 제갈데로 가버리고 곡치환은 제 계집년을 데리고 서쪽으로 향했다.

    녀인은 머리우에 펼쳐 든 고운 양산을 한들거리면서 뭣이 그리도 좋은지 허리를 꼬아가면서 깔깔 웃었다. 이년아 개화자(양산)쓰고 웃긴해도 두고봐라 네년도 넋담떨어질거다. 민호는 뒤를 따르면서 속으로 주절댔다. 네년이 본댁첩년 다 쫓아내고 늙다리한테 붙은걸 보면 돈에 몹시 감질이 난게지 아무렴 그놈의 주글주글한 변자가 욕심났겠냐. 그 돈 오늘 나도 좀 써봐야겠다.

    거리의 번들거리는 레루장우로 전차가 절그럭거리면서 오고있었다. 저쪽은 그것을 타려고 서둘렀다. 민호도 서둘렀다.

    전차가 코앞까지 와서 멎었다.

    그들이 오르자 민호도 제꺽올랐다. 놓치지 말아야했다.

    곡치환은 전차가 종점역에 이르러서야 내렸다. 민호도 내렸다.

    그 둘은 한 협착한 골목을 빠져나가 길건너의 벽돌담장을 높이 한 집의 대문앞에 이르러 멈췄다. 녀인이 죄꼬만 핸드백에서 열쇠뭉치를 꺼내여 대문의 자물쇠를 열고는 둘이 함께 들어갔다. 반남아 숨겨진 별장을 방불케 하는 이 서양풍의 아담진 단층집이 곡가의 거처였다. 대문에 쇠를 놓고 다니는걸 보면 수전노가 돈쓰는것이 아까와 하인도 두지 않는 모양이다.

    민호는 지금이 바로 손쓰기 좋은 때라 여겨 대문에 노크했다.      딸깍딸깍 게다짝을 끄는 소리 들리더니 계집이 대문을 빠끔히 열고 내다본다.

   《누구세요?》

   《곡선생을 찾습니다.》

    손님이 신사다운데다 자태가 의젓하고 태연하니 그녀는 아마 령감쟁이와 거래하는 사람인줄로 알았던지 회의도 경계함도 없이 들여놓고는 안쪽에 대고 소리쳤다.

   《여봐요, 손님왔어요!》

    곡치환은 더운날에 신사차림하고 나다녀 번열이 났던지 맨 런닝그에 속곳바람에 앉아있었다.

    민호는 집안에 성큼 들어섰다.

   《곡선생 안녕하시오? 내가 왔어.》

    곡치환은 부채질을 하다말고 멍하니 올려다봤다.

   《당신 누구요?》

    민호는 그를 눈자리나도록 여겨보면서 입을 열었다.

   《날 모르겠습니까? 곡선생이 사람을 몰라보다니, 원.》

   《당신 누군데?》

   《불청객입니다. 곡선생은 아직두 사람장사를 합니까?》

   《이, 이사람이! 무슨소릴 이렇게.... 난 장사꾼아니야.》

   《그래?.... 그러면야 탈태환골을 했군!》

   《대체 누군데 남의 집에 뛰여들어 지랄이야?》

   《나말이지. 난 염왕산토비야. 타버린 뼉다구를 보구서도 너 곡치환만은 알아보는 사람이야.》

    화가 눈섶에서 떨어졌다. 곡치환은 단통 낯이 하얗게 질리면서 벌벌 떨었다. 계집년역시 토비라는 소리에 아연실색하면서 감히 고함도 내지르지 못한다.

    뒷창문은 닫겨졌고 바깥은 높은 담장이 막혀있다. 소리를 친다해도 쉽게 구원받기 어렵게 이웃과 담을 쌓고 사는 독집이였다.

    어진 혼이 나간 곡치환은 번들이마에 내밴 땀을 손으로 닦으면서 목청을 떨었다.

   《어, 얼마를 내라우? 내, 내라면 내지. 도, 돈이 있으니까. 싸, 싹다주겠어. 여보! 그 트렁크를 내놓소!》

   《됐다! 그따위소리는 뒀다해!》

    민호는 움직이려는 그를 찍듯이 박아보면서 무서운 질문을 들이댔다.

   《스므해전에 네가 다즈녀잘 하나 꾀여서 화옥당에 팔아먹은적 있나없나?》

   《다즈녀자라?....》

   《어물쩍하게 모르쇠를 놓지 말구.》

   《다즈녀자라?....》

   《그렇다, 츄얼이라구 하는 다즈녀자를 말이다.》

   《아! 저....》

   《생각날테지. 내가 바로 그 여자의 남편이다. 네놈은 술집작부노릇하면 월급많이 받는다고 거짓말하구는 데려다 팔아먹었지.》

   《아, 그건 저....》

   《그건 어쨌다는거냐, 네가 데려간 그 집이 술집이였냐?》

   《내가 실은....》

   《네가 실은 어떻다는거냐. 이놈아, 남의 유부녀를 꾀여다 팔아먹고는 무슨 변명이냐. 네놈은 그래먹어서 이렇게 뺀뺀하게 살이 진거냐. 사람의 깝지를 쓰구 전탕 짐승의 짓만 해온 이 더러운 망나니놈아!》

   《제, 제발 용서해주슈. 내 정말이지 있는 돈 다 주겠소.》

   《이놈아, 돈이면 다냐! 헛튼궁리는 작작해라. 내 오늘 너를 잡아 원혼이 된 내 안해의 원쑤를 갚자고 온거다!》

    민호는 부르짓고는 덮치려고 일어나는 그에게 뽐창을 뿌렸다.

   《억!》

    곡치환은 면바로 심장을 맞고 바당에 폭 꼭끄라졌다.

    민호는 마지막 숨을 모으느라 턱을 까불이는 그자의 속곳을 쭉 내리우고 자지를 쭐 뽑아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들고 바들바들 떨고있는 녀인앞으로 다가갔다.

   《저런놈허구 붙어사는 네년인들 량심좋겠냐. 엣다, 이거나 처먹고 늘어져라.》

    손에것을 입에 넣자고 가져가니 녀인은 기절해 넘어졌다.

    민호는 이것으로 복수를 다하고 판을 때렸다.

    이제는 피해야 한다. 그는 트렁크를 열고 그안에 있는 적잖은 액수의 돈을 몽땅 꺼냈다. 녀인이 기혼만 하고 죽지 않았으니 이제 개복할 것이다. 그러나 개복해도 정신이 제대로 돌아서자면 시간이 걸려야할것이다. 민호는 거기서 나와 곧추 도외로 갔다.

    전의 유곽집이 그대로 있었고 간판도 걸려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화옥당>이라는 간판이 아니고 <향운려관>이란 네글자를 쓴 것이였다. 유곽이 려관으로 되었으니 다행이였다. 민호가 여기로 오면서 줄곧 가졌던 우려는 어느정도 풀리였다. 모종의 원인으로하여 만약 이 유곽이 없어졌거나 이것이 사택이나 상점이나 다른 무엇으로 되어버렸다면.... 갈보들이 들었던 방을 전부 뜯어 고칠것이요 그러면 집안의 구조나 장식이 변해버릴텐데 마루밑에다 붙여놓은 태극기가 지금까지 있을리있겠는가.

    들어가 보니 고맙게도 집안은 옛모양 그대로라 민호는 기뻤다.

   《손님도 려관잡으려오?》

    콧등에 안경을 건 백머리의 접빈하는 늙은이가 이쪽을 향해 묻는 말이였다.

    민호는 가까이 다가가 알아보았다.

   《십이호실에 손님들었습니까?》

   《안들었소.》

   《그 번호가 이 집이 유곽일 때 쓰던 그대룬가요?》

   《그대루지. 안고쳤어.》

   《그럼 됐구만!》

   《손님은 아마 그 방에 단골이였던 모양이구료.》

    늙은이는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물며 등기부를 펼치였다.

    이제 소개신이나 증명을 보여달라할것이다. 민호가 말했다.

   《등기는 하지 마시오. 난 묵지 않고 돌아갈 사람입니다.》

   《그럼?....》

    민호는 주위를 피끗살펴봤다. 다른사람이 없었다. 그는  돈 백원을 제꺽 꺼내여 주면서 수작을 걸었다.

   《나를 십이호실에 데려다주시오.》

    돈을 받아쥔 로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민호는 자기를 괴이쩍게 보는 그를 향해 집요하게 말했다.

   《거기가서 얘기합시다. 절대 애하게는 하지 않을테니까.》

    로인은 별스런 손님이 궤술을 쓴다하면서도 근 넉달월급과 맛먹는 돈이 주머니에 날아드는지라 군말없이 들어주었다.

    츄얼이가 전에 오입쟁이들을 맞아들이군 하던, 흡사 성냥갑과도 같은 방에는 통풍창모양의 자그마한 뙤창문이 하나있고 바닥은 널따란 판자 세쪽을 무은 마루였다. 저밑에 있겠구나! 민호는 마루널을 들고 밑면에다 압침으로 네면을 붙여놓은 물건을 찾아냈다. 그것은 누른색나는 얇다란 방수포주머니에 네겹으로 접어 넣은 태극기였다.

    려관의 중국로인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게 대체 뭐요? 손님은 그걸 찾느라구 왔소?》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방에서 살던 갈보남편의 사주단자랍니다.》

   《그게 그리두 귀한 물건인가, 뭐. 새빨간 거짓말을 하네.》

    로인이 코빠는 애가 아닌이상 믿어줄리 만무건만 민호는 옳다고 우기면서 령감하구야 상관없는 일 아닌가. 돈을 그만큼 받아먹었으면 더 캐 묻지 말라하고는 그곳을 인차나와버렸다.

    지금 민호는 몸에다 세가지 물건을 지니고 있었다. 뽐창과 태극기와 돈이였다. 돈은 물론 그가 곡치환의 집을 나오면서 트렁크안에서 꺼낸것이였다. 살인을 하고 돈까지 강탈했다. 그러니 살인법에 강탈범인것이다. 한데 그 수전노가 이 많은 돈을 왜서 은행에 저금하지 않고 집에다 두었을가?.... 그게 의문이지만 여하간 그덕에 유용하게 쓰게됐으니 고맙고 기뻤다. 그러잖아 호주머니가 비여 강탈하지 않면 굶어야 할 형편이였는데.

    한편 또 돈이 있어도 자기가 화약을 지고 불더미를 찾아가는것 같기도해서 해서 그는 긴장했다. 지금쯤은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였을 수도 있는것이다.

    가자, 어서 내빼자. 태극기를 감추고 돈도 감추고 쓰자. 한데 어디로 간단말인가, 이제 또다시 부금아래로?.... 안된다, 거기는 안된다. 그러면 어디로 간단말인가?.... 갈 곳도 몸둘 곳도 이 땅에는 없었다. 이런 세상에서 이만큼이라도 활개치는것이 스스로 기적같이 여겨지기도했다. 영원히 붙잡히지 않으려거든 애초에 마음먹은바와 같이 산속에 들어가 원시인으로 사는 길밖에 없다. 그래 오로지 그렇게만 살아야 한단말인가?.... 만약 구실을 달아 부적(附籍)을 만든다면, 그런다면 인간세상에 우선 발은 붙이게 될게 아니냐. 민호는 그길로 화남으로 갔다. 여러해전부터 거기에 사는 천옥령의 남편이 경찰로 있다는 것을 아니 그의 도움을 받아보자는거다.

    그런데 정작가보니 궁리가 어리석었다. 천옥령의 남편은 몇해전에 나쁜분자은익죄로 잡혀 판결받아 12년징역에 언도되여 옥살이를 하고 그녀 혼자서  아이 셋을 자래우며 고생스레 살아가고있었던것이다.

    협화회 회장노릇을 하면서 한간으로 전락된 천지주는 사위가 나라의 죄인이라해서 딸마저 랭대하면서 아예 거래를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이 지경이 되고보니 내 곁에는 이젠 아무도 없게됐어요. 마치 온역신이라도 된것 같아요. 남들이 다 외면하는 속에서 살아가자니 정말 지겨워요.》

   《우리 형제가 이토록되게 만들었구만. 참 안됐습니다. 미안합니다. 늦었습니다만 인제라도 사죄하지요.》

    천옥령한테서 왕견의 정황을 다소알게 된 민호는 과연 왕견을 대신하여 허리굽혀 사과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말했다.

   《꼴을 보니 왜놈들은 망할 징조를 하고있습니다. 무슨 <왕도락토>니 <무운장구>니 <국민정신>이니 그런건 다 개나발입니다. 요즘 돌아다니면서 볼라니 한심하더구요. 무슨놈의 운동은 그리두 많은지. 농업증산출하운동이니 흥아운동이니 광공증산운동이니....》

   《어디 그것뿐이라구요. 근로봉사운동이요 하면서 성전건국지원을 하라구 하지요. 그래서 일판에 뽑혀가는 사람은 얼마나많다구.》

   《그것보시오 백성을 그렇게 못살게 들복구야 나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발악이지요. 압박과 착취를 죽어라고 하니까 이건 제 망할징조를 보이는겁니다. 두고보시오 왜놈들은 오라잖아 꺾구러지고말겝니다.》

   《글쎄요. 그놈들이 빨리망해버렸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때되면 애의 아버지도 옥살이를 거두고 돌아올건데요. 그렇잖아요.》       《나올겁니다. 꼭 나올겁니다. 일본은 지금 태평양에서 거듭거듭 패전을 한다는 소문이 돈지 오랍니다. 두고보시오 일본도 망하고 만주국도 망항할 날이 오라잖다니까요.》

    민호는 그녀에게도 자신에도 신심을 돋구느라 이렇게 말했다. 천옥령이 아직도 가슴속에 반만항일감정을 품고있으니 대견하고 고마웠다. 지주의 딸이고 남편이 경찰인 녀인이 각오가 이같이 높고 굳은것은 그야말로 중국부녀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믿고오셨는데 어떻게 할가요? 장차 어떻게 살아갈건가요?》

   《글쎄요. 솔직히 말해 막연합니다. 정 안되면 다시 산으로 들어가 새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과연 그런수밖에 없을가요?》

   《나도 그렇게 하는건 신통치 않은 막수라는걸 압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는 본래 의렬단원이였구 독립군이였습니다. 안중근, 윤봉길을 본받을 생각도 납니다. 그들처럼 내 생명으로 조선과 중국을 침략한 왜놈의 우두머리를 하나라도 없애버리고 싶습니다.》

   《그런가요! 실로 장부다운 기개네요! 그런 소릴 들으니 내 가슴이 막 뛰네요!》

    천옥령이 감격되여 하는 말이였다.

    민호는 여러말을 더 할 수 없었다. 좀이라도 더 지체했다가는 애매한 사람에게 루를 끼칠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쓸 돈을 얼마가량 남기고는 천원이 넘는 거액을 그녀앞에 내놓았다.

   《이 돈 받으시오. 받아야 합니다. 생활에 보태쓰십시오. 빼앗은 돈이기는 합니다만 빼앗아야 할 돈을 빼앗은거니 꺼려할것 없습니다. 마음놓고 쓰시오.》

    사나이의 곡진한 태도에 천옥령은 거절할 수 없었다.

    천옥령이 돈을 받는것을 보자 민호는 태극기를 꺼내여 그녀에게 주면서 잘 건새해달라했다. 천옥령은 그러마고 선선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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